어둠이 짙게 드리운 저녁시간, 홀로 앉아 있던 소년의 눈동자는 희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이곳은 꿈 연기 학교, 이곳에서 배우는 학생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 꿈을 표현하고, 그 속에 담긴 제일 깊은 감정들과 마주하는 법을 배운다. 오늘도 수많은 학생들이 자신만의 색깔을 찾아가는 여정을 이어가는 중이었지만, 그중 한 명인 준수는 늘 조용했고, 특별히 눈에 띄지 않는 존재였다. 그가 가진 것은 세상 사람들이 기대하는 화려한 연기나 자신의 진심을 담은 감성보다도, ‘사랑’이라는 감정 자체에 대한 무지였다. 그는 사랑이 무엇인지 몰랐고, 사랑을 모른다는 것이 얼마나 고립되고 의미 없는 것인지 깨닫기만 했다.
오늘은 대개 학생들에게 자신이 꿈꾸는 감정을 표현하기 능력을 키우도록 격려하는 수업이었지만, 준수는 늘 그의 자리에서 조용히 옆에 있었다. 그에게는 단순한 연기 연습보다도, 꿈 속의 감정을 경험하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그것은 마치 어딘지도 모를 어둠에 갇힌 듯했으며, 그는 누구도 그 벽을 허무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지 않는 것처럼 느꼈다. 그런데 오늘 수업이 끝날 무렵, 이상하게도 선생님이 그를 멈춰 세우면서 따뜻하지만 강렬한 눈빛으로 말했다.
“준수야, 너는 사랑에 대해 아직 알지 못하는 것 같아. 그게 어떤 감정인지 모르기 때문에 너에게 조금 특별한 연기를 보여주고 싶다.”선생님은 부드럽게 웃으며, 미묘한 기대감과 배려가 섞인 표정을 지었다. 그가 건넨 말은, 그 어떤 말보다도 깊고 오묘한 의미를 품고 있었다. 선생님은 마법 학교의 특성상, 연기를 통해 타인의 꿈을 재현하는 동시에, 그 속에 숨어 있는 감정을 치유하고 치유받는 과정을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은 준수에게 어떠한 강요도, 평가도 하지 않으며, 오로지 그가 드러내고 싶은 감정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내려 했다. 그리고, 선생님이 손에 쥔 작은 구슬은 언제나처럼 빛나며, 꿈과 현실을 잇는 마법의 매개체임을 상기시켰다.
준수는 선생님의 말에 이끌려 무대에 발을 내딛기 전에 잠시 멈춰 섰다. 숨을 깊게 들이쉬고, 이번이 처음인 것처럼 조심스럽게 눈을 감았다. 그는 자신에게 ‘사랑’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려고 애썼지만, 마음은 텅 빈 공간처럼 느껴졌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 감정을 채운다는 것은 어쩌면 가장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선생님의 따뜻한 손길이 그의 어깨를 감싸며, 마음속 어딘가에 퍼지는 은은한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구슬의 빛이 점점 강렬해지며, 그의 시야가 희미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곧, 그는 꿈속의 무대 위로 끌려 들어갔다.
처음 등장한 곳은 울창한 숲속이었다. 잎사귀는 찬란한 황금빛으로 빛나고, 부드러운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들며 조용한 선율을 만들어냈다. 모든 것이 조심스럽고 정돈된 듯했으나, 동시에 무언가 애절한 느낌이 깃들어 있었다. 숲속의 한 작은 계곡 앞에 서서, 그는 마치 시간도 멈춘 듯 정적을 감상했고, 그 안에 흐르는 감정이 무언지도 알 수 없게 짙어졌다.
그러다 갑자기, 그 앞에 나타난 여성은 준수의 눈에 익은 모습이 아니었다. 붉은 머리카락이 흩날리며, 눈은 깊이 스며드는 듯한 푸른 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그녀는 차분하게, 그러나 강렬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랑이 뭔지 몰라서 왔니? 아니면 두려워서 두 발로 다가서지 못하는 걸까?”
준수는 그 말을 듣고 순간 멈칫했고, 그의 내면은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그녀의 눈빛은 따뜻했으며,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점점 스며들면서 더욱 명확해졌다. 이내 그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눈을 깜빡이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미묘한 표정이 얼굴에 떠올랐다. 그 속에 담긴 것은 바로 ‘호기심’과 ‘두려움’이었지만, 동시에 무언가를 깨닫는 듯한 깨달음의 빛도 자리잡기 시작했다. 그녀와의 대화는 서서히 진실된 마음을 찾기 위한 여정을 의미했고, 그 안에서 준수의 숨겨졌던 마음의 문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선생님의 목소리가 조용히 들려왔다.
“준수야, 사랑은 아직 너에게 먼 곳에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 감정을 향해 다가가는 것, 그 용기가 바로 진짜 너의 변화의 시작이야.” 그리고 그 말과 더불어, 선생님은 손짓으로 무대를 비추며, 다시 현실로 돌아오라는 신호를 보내었다. 준수는 그의 몸이 무언가를 강하게 끌어당기듯 다시 현실의 무대 위에 있었다.
그가 깨어난 뒤, 선생님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고, 손끝으로 그의 눈길을 잡아끌었다. “준수야, 오늘 너의 연기는 최초이자 아름다웠어. 사랑에 대한 이해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중요한 것은 네 마음이 마음속에서 빛나기 시작했다는 거야. 앞으로는 더 많은 꿈을 연기하면서, 너 스스로를 찾아가는 여정을 계속하자.” 준수는 아직은 미완성된 듯한 감정을 품은 채,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무대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그의 뇌리에는 하나의 질문이 자리 잡았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그 답을 찾기 위한 그의 여정은 이제 막 시작되었지만, 확실한 것은, 그가 좀 더 깊게 자신을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마지막 순간, 수업이 끝난 뒤, 선생님의 눈빛이 다시 한번 빛나면서,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예고하는 듯한 미묘한 기대를 남겼다.